* 《여름밤, 상喪, 그리고…》의 비하인드입니다.
* 멋진 작품 써주시고 작성도 허락해주신 햄님께 언제나 무한한 감사를....
* bgm: https://youtu.be/o7j7zdllQMs?si=yUZlrvWEjc3h5UW2
唯哭先復. 復而後行死事.
(오직 곡할 때에는 먼저 초혼을 한다. 초혼을 하고 난 뒤에 사사(死事)를 행하는 것이다.)
《예기》〈喪大記〉
키워드는 不歸, 이규는 안다, 上位 復 이었습니다.
1.
초혼(招䰟)은 전통적인 상례 절차 중 하나로, 동쪽 지붕 위에 올라가서 죽은 이가 입고 있던 겉옷을 ‘북망산천’이 있는 북쪽을 향해 흔들며 떠난 혼에게 돌아오라고 세 차례 “복(復)”을 외치는 행위입니다. 죽은 자를 붙잡기 위한 남은 자의 처절한 외침이며, 상위 복(上位 復)은 그런 초혼의 종류 중 하나입니다. 이규가 알 법한 초혼 의식을 생각해 봤을 때, 역시 제일 알맞는건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는 임금의 초혼 의식인 ‘상위 복’이라 생각했어요. 임금이시여 돌아오소서. 저는 쫑규의 묘한 군신 관계스러운 느낌도 좋아하기 때문에 잘 어울리는 것 같아 기쁩니다.
2.
원작에서의 이규는 종수의 저승사자였지만, 이 작품에서의 이규는 종수의 유족입니다. 제 작품은 괴담이라기 보다는 남겨진 이에 대한 이야기여서, 어떤 역할로서의 이규보다는 종수의 연인이자 ‘사람’인 이규를 조명해보았습니다. 길 잃은 귀신을 떠나보내야 했던 저승사자는 제 역할을 다한 후 떠난 넋을 붙잡고픈 상주가 되었습니다. 이규가 종수의 인간 관계 속에서 아주 많은 역할(친구, 파트너, 보호자 등)을 수행하고 있는 원작 포인트를 살릴 수 있어 좋았습니다.
3.
이규가 종수의 이름을 세 번 불러 그를 떠나보냈던 것처럼, 초혼을 할 때도 죽은 이를 세 번 부르며 돌아오라고 외쳐야합니다. 그러나 이규의 외침은 (한자를 기준으로 세었을 때) 세 번을 채우질 못합니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낼 수 없었으나 자신이 보낸 이를 다시 붙잡을 수도 없었습니다. 불귀. 이규는 종수가 돌아오지 못한다는 걸, 돌아 와선 안된다는 걸 알았습니다. 끝까지 종수를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종수를 걱정하고 위하는 이규를 좋아합니다.
4.
상위 복 도중 相...은 서로 상, 상공(相公) 할 때 그 상이에요. 그리운 마음이 초혼을 망쳤습니다. 종수의 연인, 종수의 ‘규’가 종수의 안식을 지켜주기 위해 그리움을 억지로 부스러트렸습니다.
5.
종수는 이규가 뭐든 알고 있는 것처럼 굴고, 실제로도 이규는 대부분 알고 있었지요. 그 점이 종수의 관찰자이자 서술자인 이규의 특성 같아서 너무 좋았어요. 그러나 귀신의 존재는 불가해하고 불확실하고, 심지어 이규는 종수의 마지막을 추측할 뿐 직접 보지는 못했지요. 이규는 이제 자신이 종수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게 이규의 가장 큰 슬픔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6.
장례 절차에 관한 단어를 많이 썼습니다. 읍泣은 소리는 내지 않고 눈물만 흘리는 모습이고, 곡哭은 소리도 내고 눈물도 흘리는 모습입니다. 종수의 마지막을 눈에 똑똑히 담고 싶어, 슬픔조차 원망스러워 이 악물고 울지 않던 이규가 종수의 불귀에 끝내 무너지는 모습을 순차적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7.
인식표에 적힌 걸 제외하고 종수의 이름은 한 번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부를 수 있는 건 산 자의 이름 뿐이고, 떠난 넋을 다시 부를 순 없는 노릇입니다. 아.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김소월의 시 ‘초혼’ 中-
8.
초혼은 장례의 시작을 알리는 풍습입니다. 곡을 하기 전에 초혼을 해야 하고, 곡이 있어야 장례가 시작됩니다. 그러나 초혼 의식을 멈췄는데도 이규가 곡을 해버려서 결국 장례는 시작되고야 말았습니다. 이규가 아무리 부정하더라도 이미 시작한 장례를, 다가온 끝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9.
마지막은 일부러 마침표를 찍지 않았습니다. 제목도 원작인 여름밤,녹우,그리고 끝과 다르게 차마 끝을 쓰지 못했습니다. 손수 작전 종료를 알리면서도, 박 일병에게 귀환을 알리면서도, 이규가 작품 내내 끝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