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모든 트라우마의 탄생이고, 죽음만이 유일한 안식이다.」
「돌아올 이유」 해석글입니다.
해석...이라고 해야할까요. 모티브가 된 영화의 분위기를 최대한 살리면서도 원작을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써봤는데 통했는지는 미지수네요. 모든 독자분들이 큰 불편함 없이 재밌게 읽으셨기만을 바랍니다.
사실 작가가 직접 이걸 쓰는게 맞나 하며 많이 고민했는데, 궁금하시다는 분이 한 분이라도 계시다면 일단 당연히 뭐라도 써드려야 하는 강호의 도리를 따라 열심히 써보겠습니다. (의견 남겨주신 트친분 감사합니다 사랑해용)
포타로 쓰는 이유는... 쫑규 포타를 하나라도 더 늘리고 싶어서.... 이런 저라도 사랑해주세요... 다들 포타 많이 써주세요...
아래는 주의사항입니다. 괜찮으신 분들만 본문을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오로지 본문만의 느낌을 안고 가고 싶다/읽고나서 개인해석을 망치고 싶지 않다 싶으신 분들은 읽지 않는 것을 권장드립니다.
- 종수와 이규의 관계에 대한 개인 해석이 아주많이많이많이 들어가있습니다.
- 제가 어휘력이 그닥 좋은 편이 아닙니다!!!!! 잘 이해되지 않거나 모르겠는 부분은 문맥따라 '대충 이런 mood인갑다~.' 하며 넘어가주세요...
선정곡은 제가 생각하는 쫑규 분위기ver. 입니다. 돌이유 쓸 때도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지금 쓰면서도 듣고 있습니다. 어딘가 불편하고 답답하고 거북한 분위기를 정말 좋아해서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들으면서 읽어주세요.
0. 쓰게 된 계기
그곳에 쫑규가 있고 기담이 있어서……
실제로 영화 『기담』(2007) 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인생작품입니다. 애달픈 사랑,오컬트 호러도, 축축하고 눅눅한 분위기,미학적 연출 등등... 거의 제 취향의 정수만 담아놓은 영화라서 곱씹으며 좋아하고 있는데, 쫑규를 파게되고 잘 덕질하다가 갑자기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잠깐만 아!!!!!!!!!!!!!!이거 쫑규아이가!!!!!!!!!!!!!!!!!"
싶어졌기에 트친님과 함께 재감상하고 바로 달렸습니다. '오컬트호러 사랑 가득 체할 것 같은 쫑규를 쓰자.' 오직 그 마음 하나만으로……
좋아하는 모든 속성을 지닌 최애 커플+인생 최애 영화의 시너지는 무섭더군요. 돌이유가 제가 모든 장르 통틀어서 제일 단기간에, 길게 쓴 포타입니다. ㅎㅎ (사실 반쯤은 쫑규러분들께 기담 영업하고 싶어서 쓴 것도 있어요 제발봐주세요.....)
1. 이야기의 바탕
시간대는 정확하게 생각하진 않았지만 실제로는 졸업 후, 20살쯤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둘이 운전을 할 수 있는 나이...까지만 생각했었는데, 사실 편하신대로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
전반적인 스토리 스토리의 흐름은 아무래도 영화를 직접 보셔야 이해가 더 잘 되실 것 같습니다. (그러니제발봐줏세요) 간단하게 정리해보자면 '억울하게 이규를 잃은 최종수가 견디지 못하고 이규를 불러내는 이야기.' 입니다.
둘은 함께 차를 타고 떠났고 (목적지는 바다였습니다.) 함께 잘가던 중 음주 운전 차량에 의해 사고가 나 차량은 추락했습니다. 이규는 그자리에서 즉사하고 최종수는 살아남았죠. 오른 다리가 작살났지만 이규의 말대로 다시 농구를 할 수 있는 몸이긴했지만, 앞으로는 이규와 농구를 할 순 없게 되었죠. 최종수는 그를 받아들이지 못한 채 연쇄살인을 일으키고, 돌아온 규에게는 그림자가 없습니다. 갑작스럽게 사랑을 잃은 이와 그런 그를 떠날 수 없는 이. 이 이야기는 이런 둘(하나?)의 이야기입니다.
그림자가 없다...는 기담 소재를 그대로 차용한거지만, 저는 '계속해서 상대의 죽음을 상기시키는 요소' 이자 '분신을 잃어버렸다.' 라는 의미로 썼습니다. 실제가 아닌 '또 다른 자아' 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우리 종수가 모두를 속였네요. 종수와 이규는 짝을 잃었으니, 어찌보면 둘다 그림자를 잃은게 맞긴 하지만요.
작중에선 일부러 사랑한다는 말은 쓰지 않았습니다. 오직 사소하지만 서로가 알아챌 수 있을 정도의 행동(기대오면 움찔하거나, 머리를 쓰다듬어주거나 등등..) 으로 둘 사이 호감과 애정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잘 됐을지는 모르겠네요. 둘의 사랑이 느껴지셨나요. 부디 그랬어야 하는데.. 이 글은 로맨스인데.. 안이루어지더라도 사랑은 사랑인데...
종수와 이규는 서로의 감정을 어느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그대로 바다에 도착했다면 둘은 사귀었겠죠.
2. 숫자와 한자
형식은 순전한 저의 취향입니다. 숫자로 정렬될 때의 뚝뚝 끊기는 무기질적인 느낌과 건조함을 좋아합니다. 전개를 섞어두기에도 효율적이고요.
숫자 장(章)은 '규'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부분이고, 한자 파트에서는 '최종수'의 회상이거나 그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회상은 과거형, 현재 시점은 진행형으로 서술했습니다. ('규'와 이규, '종수'와 최종수의 차이는 추후 서술하겠습니다. )
흐름을 따져보면 한자 一, 三 -> 승대 발언 이후 문단-> 01 -> 02~九 -> 0 순입니다. 이대로 읽으면 좀더 이해가 잘..되지..않을까요..?
한자 二가 없는 건 최종수가 지금 둘, 함께라고 느끼고 있지 않아서 입니다.
02~09에서 '종수'에게 그림자가 없는건 그걸 최종수가 바랐기 때문입니다. 최종수는 그날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하니까요. 규가 살아있기를,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제 곁에 있어주길 바랐기에 규의 기억에는 구멍이 나있었습니다만... 이규, 그러니까 '규'도 결국 이규이기에 결국에는 깨닫고 맙니다. 규는 관찰력이 좋고, 잘못된 상황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선 안에서 해결하려 들고, 보이는 걸 믿고, 꿈속에서 살 순 없는 인물이니까요.
四 와 九가 붙어있는 건 '규'랑 최종수, 그리고 49제를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이규는 그날 차에서 죽었습니다. '규'가 있지만 그가 완전한 이규는 아니라서 작중에 四는 있을 수 있지만 04는 없습니다.
09가 09인 이유는 2+3+4=9. 9장에서는 많은 것이 합쳐지는 곳입니다. 이규는 다시 종수의 공범이 되려고하고, 실제로도 이규와 '종수'는 같은 존재였다는 걸 드러내는 부분이기도하고...
09와 九는 그저 시점의 차이일 뿐입니다. 이규인 줄 알았던 '규'의 시점과 최종수의 시점. 하지만 결국 같은 9, 같은 인물인거죠. 눈밭에 서있던 건 한 사람 뿐입니다.
마지막 단락이 0인 이유도 비슷한 논리입니다. 이규는 이제 없고, 종수 또한 그날밤 죽었죠. 남아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0.
3. 스노우볼
영화 속 제가 제일 사랑하는 소재이자 이야기의 중심이고 배경인 소품이라서 꼭 넣고 싶었습니다. 쓰다보니 생각보다 쫑규의 그사세적 모먼트와도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어찌나 기뻤는지.
작은 유리돔 속 세상. 딱 그정도가 뭔가... 쫑규의 영역 크기라고 생각했어요. 서로가 서로밖에 없는, 남들이 비집고 들어올 수 없는 그들만의 세상... 심지어 매번 외부가 흔들어줘서 폭풍이 치고 있잖아요. 행복해보이고 아늑하지만 그렇다고 평화로운가? 그건 좀.... <<정말 쫑규같다고 생각합니다.
최종수(이하 종수)는 규가 준 스노우볼을 '우리 같아서' 아낍니다. 작은 유리돔 속에 가장 좋았던 시절의 종수와 이규가 들어있는 모습이라서요. 하지만 이규가 죽었음에도 종수는 이 세계 밖을 벗어날 생각이 없습니다. 영원히 눈이 그치지 않는 작은 세상속에서 규와 늘 함께, 그렇게 가장 좋았던 순간을 영원히 봉인해두려 합니다.
그렇지만 쫑규의 세상은 늘 외부에게서 위협과 영향을 받습니다. 둘의 관계는 언제나 완전하긴 어렵나봐요. 규가 죽어서 둘의 세계가 깨진 것처럼, 또 누군가 종수의 스노우볼을 건드립니다.
네, 바로 승대입니다. 승대 최고. 승대사랑해.
가비지타임에서도 종수-규 투톱으로 돌아가는 장도고에 갑자기 편입된 비슷한 능력치의 비협조적 존재인 임승대. 다른 팀원들 모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장도고 분위기(쫑규분위기) 속에서 혼자 수긍하지 않고 매번 종수와 갈등을 빚고 이규를 곤란하게 만드는 승대와, 그가 끼치는 영향을 너무너무 좋아해서 작품에도 한 번 녹여봤어요. 종수-규가 만들어낸 그사세에 유일하게 발을 들이밀 수 있는 힘을 가진 친구가 누구일까 고민했는데, 역시 승대밖에 없다는 결론이 났었습니다. 승대 최고야!
그래서 승대의 전화가 걸려옵니다. 직접 와서 깨부신것도 아니고, 그럴 의도를 가졌던 것도 아니었는데(승대는 종수의 상황을 몰랐으니까요..) 그냥 외부에서 던져진 가벼운 통신이 종수의 스노우볼 세계에 균열을 냅니다. 이 얼마나 불합리한가. 하지만 완전히 파괴하는데엔 실패하는 점마저 승대같지요.
그럼에도 알아버린 이상 무시할 수 없는 게 사람 심리니까요. 종수는 규에게 그림자가 없다는 사실을 이제 잊을 수 없습니다.
여담으로, 진실이 밝혀지는 이 부분은 원래 승대와 종수가 규의 납골당에서 마주치는 걸로 짰었는데, 이규(실은 종수지만요)가 그곳에 갈까 싶어지기도했고. 너무 자질구레해지는것도 같고... 그래서 깔끔하게 전화로 돌렸습니다. 잘 선택한 것 같아요.
...쓰다보니 저도 애들 이름이 되..게 헷갈리네요. 죄송합니다. 제가 이름에 아주아주 큰 의미를 두는 사람이라... 빠르게 밑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번갈아서 읽으시면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흐름만 잡으면 그리 어렵지 않으니까요 응응....
4. '규'와 '이규'
규는 종수의 이규입니다. 시작은 속으로만 부르던 호칭이었어요. 규= 그림자가 없다=최종수가 만들어낸, 불러낸 존재 입니다.
사람이 죽은 뒤에 남는 넋. 규는 남은 것. 즉 귀신, 이미 죽었다...라고 암시를 주고 싶었었는데 잘 됐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숫자파트에서 나오는 이규도 사실 규였습니다. 왜 헷갈리게 이규라고 썼냐면... 그때는 '종수'가 있었고.. 규 또한 자신이 찐 이규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최대한 혼선을 주려는 의도였습니다. 종수가 그걸 바랐어요.
규가 실제로 하는 말과 행동은 대부분 종수가 생각하는 이규의 모습입니다. 현 상황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사소한건 넘어가고, 괜히 캐묻지 않고, 제 손을 잡아주는..
하지만 예외가 딱 하나 있습니다. 바로 四장입니다.
"하지만, 우리 함께 있잖아."
이 부분만은 종수의 규 캐해라기 보단 종수의 희망사항입니다. 실제 규의 귀신이라면 이런 말을 하진 않았겠죠.
규는 이런 말을 하지 않을 걸 종수도 알고 있기에, 이 말을 통해 종수는 이 모든 것이 꿈임을 자각합니다. 자신은 '종수'가 아니라 최종수임을 다시 한 번 자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생각해봅시다. 정말 규가 종수의 허상이기만 한다면, 종수의 부름에 그렇게 참담한듯이 굴었을까요?
규에 대해서는 되도록 해석의 여지로 남겨두고 싶습니다. 실제로도 규가 정말 귀신일지, 허상일지. 규가 정말로 종수의 곁에 있을지 아닐지는 각자의 생각에 남겨두고 싶어요. 우리 인간에게 영혼이 없다 생각하는 건 너무 쓸쓸하지 않겠습니까.
최종수는 규가 있다고 믿고싶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진 않습니다. 정말 규가 여전히 종수의 곁에 있더라도 종수는 볼 수 없고요. 결국 어떤식으로도 규는 있고, 동시에 없군요. 이 무슨 슈뢰딩거의 이규. 아이러니하게도 둘은 영원히 함께할 수 없으면서도 함께하고 있네요.
저는 사실 이 부분이 정말정말 원작 쫑규 같다 생각합니다. 종수와 가장 가까이 있고 함께해왔지만, 이규는 종수의 세계에 완전히 들어갈 수는 없죠. 현재의 종수는 부담과 압박으로 가득찬 개인의 세계에 그의 자캐(...)와 살고 있으니까요. 종수와 이규는 그저 같이 있을 뿐입니다. 둘이 함께 있는다고 해서 각 개인이 느낄 외로움을 완전히 지울 순 없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함께하기를 소망하죠.
사실 이규는 영혼의 존재를 믿지 않았습니다만, 답지 않은 종수의 물음에 부러 낭만적으로 대답한 것도 없잖아 있었습니다. 별 일이죠. 종수는 그 말 때문에 여기까지 왔는데.
5. '최종수'와 '종수'
망자. 죽지 못했는데도 그날 죽은 사람. 살아서 귀신이 된 사람. 제 분신을 뻇긴 사람. 억울하게 남겨진 사람. 또다른 귀신.
결국 이 이야기는 최종수로부터 시작되고 최종수로 끝납니다. 규 또한 최종수가 만들어 낸 것이니, 결국 모든 문단은 다 최종수의 이야기였네요.
종수는 이규의 종수였습니다. 작중 나오는 모든 종수와 최종수는 같은 인물입니다.
뭐 사실 그건 이규의 호칭이라 이규가 죽은 순간부터 '종수'는 없어진건데, 그걸 또 아득바득 이어붙여서 규를 불러내고 '종수'를 만들고... 독하다 독해 인간태풍.(내가미안해...)
16살 때 규의 말을 듣고 코가 꿰인채 이규의 존재를 당연하게 여기고 사랑했는데 세상이 갑자기 그의 애착빡빡이를 뺏어갔습니다. 심지어 이규는 끝까지 자기 얘기는 안하고 갔고, 사랑한다는 말 조차 꺼내보지 못하고 사랑한다는 본심조차 듣지 못한 채, 제대로 된 관계가 되기도 전에 모든 게 끝나버렸습니다. 아무 일도 없을 것 처럼 굴어놓고, 앞으로도 당연히 함께 할 것 처럼 굴어놓고. 네가 살려준 목숨인지라 감히 따라죽지도 못하는데.
불러줄 이를 잃은 종수는 그날 죽었고, 혼자 살아남았다는 자기혐오와 세상의 거대한 불합리함에 몸서리치는 최종수만이 홀로 남았습니다. 그림자는 곧 분신이고, 종수의 그림자는 규였습니다. 분신을 잃은 사람이 똑바로 살 수는 없습니다.
"이규."
그렇기에 '최종수'는 '이규'를 부르고, '규'는 '종수'에게 돌아옵니다.
6. 돌아올 이유
사실 규가 돌아올 이유 따위는 없습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돌아올 수도 없고, 애초에 둘은 그정도의 강제성을 띌 수 있는 정도의 관계도 아니고... 규가 우리 둘다 살 수 있어 라고 한 것도 아니고... 하지만 종수가 그런걸 신경 쓸 겨를이 있었다면 일이 이지경까지 되진 않았겠죠.
종수는 관계를 구축하는 데에는 서툽니다. 그건 늘 규의 몫이었으니까요. 종수는 이 모든 상황이 막막하고 억울하고 사리 판단 어려운 이 상황에서, 어떻게든 규를 묶어놔야 하는데 방법을 몰라 한참 헤맵니다. 그러다 둘 관계의 축을 꺼내와서 요구하는겁니다. 그러다가 겨우겨우 잡은 껀덕지가 그거였던거에요.
"약속을 지켜, 이규."
암묵적인 약속과 그로 인한 신뢰. 그리고 그 도식의 반복적인 성공을 통해 서로에게 쌓인 애정과 호감. 종수는 이 밖의 영역을 모릅니다. 자기가 생각해도 구차해보일만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진짜 죽을 것 같은데 어쩌겠습니까. 스스로가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건 알고있지만, 그깟 억지 몇 번에 네가 돌아와주기만 한다면 몇 번이고 할 자신이 종수에겐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걸로는 부족한 감이 있지요. 그래서 종수는 직접 규가 돌아올 이유를 만들어줍니다. 바로 살인입니다.
규는 종수의 살인을 엇나간 복수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그것보다 좀 더 많은 의미를 가집니다. 최종수의 살인은 일종의 주술입니다. 이규를 불러 낼 수 있는 주술.
피해자들은 가해자를 향한 투영보다는 규를 위한 제물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자기자신을 향한 분노이자 혐오이죠. 오른 다리를 유독 집요하게 노리는 이유가... 네.
이런 행동을 이규가 달갑지 않아할 것을 최종수는 알기에 살인을 멈출 수 없습니다. 섬뜩한 간원(懇願)이에요.
'네가 그토록 아끼는 내가 이렇게 망가지고 있다. 그깟 천하제일이고 뭐고 나는 너의 복수를 위해 끝없이 손에 피를 묻힐 것이다. 이런 나를 지켜만 볼 셈이냐. 내가 이러는 게 싫으면 돌아와서 네 의무를 다해라. 그러니 제발 돌아와달라... ' 뭐 이런 느낌입니다. 종수는 아직 아기라서 이런 방법밖에 몰라요.
웃기는 점은 이 모든 행동이 결국 부질없음을 모두가 안다는 거에요. 종수도요. 지금 규까지 만들어냈는데도 만족하질 못하고 있잖아요. 보이면 믿을 수 있다는 이규의 말을 아득바득 믿어서 눈앞에 있는 규를 눈에 하염없이 박아넣고 있으면서도 쓸쓸함을 지우질 못합니다. 머리로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규는 종수의 살인을 막을 수 없습니다.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규가 살아 돌아오는 것 뿐이거든요.
그렇게 최종수는 끝없이 이규를 부릅니다. 종수가 부르는 "이규"는 호명(呼名)이자 강령(降靈)이고, 절절한 애원(哀願)이자 시기를 놓쳐버린 고백(告白)입니다.
7. 그외에
- 쓰면서 기담ost, 헤어질결심 엔딩곡, 그리고 jack conte-kitchen fork 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 손이 많이 나오는 건 가장 농구선수에게 필요하면서도, 또 연애적인 의미도 크고, 원작에서 나오기도 했고... 다양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좋으실대로 봐주시면 됩니다.
아진짜생각보다너무길어졌다.....................
쓰다보니 너무 뭔씹그자체 tmi파티 원작자가 작품을 해체시켜서 완전 노맛으로 만들어버린 기분이라 조금 걱정입니다. 그저 '이 오타쿠... 좋아하는거 얘기한다고 신났네..' 하며 너그러이 봐주시고, 글을 위한 참고자료 정도로만 생각해주세요.
여전히 이해 안되는 부분들이 있으실 수도 있는데, 가끔씩은 몰이해에서 오는 묘미를 느껴보는 것도 저는 강력히 추천드립니다. 이 이야기는 어차피 기담이니까요. 이해의 측면보다는 감상쪽에 중점을 두는 건 어떨까요? 물론 또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질문해주셔도 됩니다. 완전 환영. 최고에요.
읽어주신 분들의 모든 개인 해석과 의견을 존중합니다. 있으시다면 제발 저에게도 들려주세요 저 궁금해 죽어요.
작품속에서 제대로 못 다룬 소재도 몇 있는데, 그건.. 기회가 된다면 다른 작품으로 찾아뵙겠습니다.
함께 쫑규해주시는 모든 분들과 제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에게 이 글을 바치며.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